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2
일단 우리가 책을 펼치면 시간과 장소에 대한 감각은 모두 날아가버린다.
우리와 책은 형이상학적으로 하나가 되어서 외부의 자극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우리는 어느 구석에 숨겨져 세상으로부터 격리되고 고립된,
감각이 없는 하나의 얼룩처럼 앉아 있다.
단지 우리, 즉 우리의 생각과 책이 있을 뿐이다.
책중독의 복잡한 내용에 대해 모르는, 일부 책중독자가 아닌 사람들은
이런 징후를 읽고서 우리가 외롭다고 잘못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를 만찬이나 사교의 밤에 초대한다.
그들은 호화로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행복한 얼굴을 하고서 우리가 필요한 사람이고
외롭지 않다고 느끼게 만들려고 있는 힘을 다한다.
------------------------------------------------------ ( 2012-01-04 13:20 )
「책을 다룰 때의 십계명」
-. 모든 방문객들은 들어선 즉시 신을 벗어 이 서재의 성지聖地에 경의를 표한다.
-. 펜을 비롯한 모든 필기구는 출입문에서 확인을 받는다.
-. 책을 만지기 전, 출입문에서 제공받은 장미 향수 그릇에 손을 씻는다.
-. 서가에서 책을 뽑을 때 책등 끄트머리로 잡지 않도록 한다.
그보다는 중국 명나라 시대의 꽃병처럼, 즉 두 손으로 책을 다루도록 한다.
-. 책 쪽을 향해 숨을 쉬고 침을 내뱉고 재채기와 기침을 하고 침과 가래를 흘리는 등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된다.
-. 책 한 귀퉁이를 접어 페이지를 표시하거나
심지어 그렇게 할 생각을 하는 사람은 차고에 있는 단두대로 즉시 인도된다.
-. 책의 페이지를 넘겨보고 싶은 사람은 각 서가 끝에 있는,
특별 제작된 종이칼을 사용해야 한다.
-. 손가락에 침을 묻혀 페이지를 넘기는 사람은 즉시 교살당할 것이다.
-. 책등에 금이 가게 하는 자는 즉시 이 서재의 주인에게 보고할 것이다.
그런 자의 두개골에도 금이 갈 것이다.
아이고 번역도 어쩜 이리 잘 해주셨는지
------------------------------------------------------ ( 2012-01-04 13:24 )
우선 사실을 말해보자. 첫 번째 사실은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치유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억제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조차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철석같이 책을 사랑하면서 궁핍이든 무명無名이든 고상한 망상이든
혹은 그 비슷한 무엇이든, 어떤 두려운 결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단호히 우리의 중독을 따를 것이다.
라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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